산골스님의 향기로운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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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리자(2015-02-03 10:46:41, Hit : 4564
  아름다운 삶은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 <금강경 강설6>



                <금강경 강설6> 아름다운 삶은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

                                                   덕조德祖/송광사 승가대학장


妙行無住分 第四
묘행무주분 제사

<본문> 復次須菩提부차수보리 菩薩보살 於法어법 應無所住응무소주 行於布施행어보시 所謂不住色布施소위부주색보시 不住聲香味觸法布施부주성향미촉법보시 須菩提수보리 菩薩보살 應如是布施응여시보시 不住於相부주어상 何以故하이고 若菩薩약보살 不住相布施부주상보시 其福德기복덕 不可思量불가사량 須菩提수보리 於意云何어의운하 東方虛空동방허공 可思量不가사량부 不也불야 世尊세존 須菩提수보리 南西北方남서북방 四維上下虛空사유상하허공 可思量不가사량부 不也불야 世尊세존 須菩提수보리 菩薩보살 無住相布施무주상보시 福德복덕 亦復如是역부여시 不可思量불가사량 須菩提수보리 菩薩보살 但應如所敎住단응여소교주
<해석>
또 수보리야, 보살은 모든 법에 있어서 머무는 바 없이 보시를 해야 하는 것이니, 어떤 상에 집착하여 베풀지 말며, 소리와 향기와 맛과 감촉과 그 외의 온갖 것에 머물지 말고 보시를 해야 한다. 수보리야! 보살은 반드시 이와 같이 보시하고 어떤 상에 머물지 말아야 한다. 왜냐하면 만약 보살이 어떤 상에 머물지 않고 보시하면 그 복덕은 헤아릴 수 없기 때문이다.
수보리야! 어떻게 생각하는가? 동쪽 허공을 가히 헤아릴 수 있겠는가?
헤아릴 수 없습니다. 세존이시여!
수보리야 남쪽 서쪽 북쪽과 네 간방과 위쪽과 아래쪽의 허공을 헤아릴 수 있겠는가?
헤아릴 수 없습니다. 세존이시여!
수보리야 보살이 상에 머물지 않고 보시하는 복덕도 또한 이와 같아서 가히 헤아릴 수 없느니라.
수보리야! 보살은 마땅히 가르치는 것과 같이 머물지니라.
<강설>
묘행무주분은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어떻게 수행할 것인가 방법을 말하는 부분이다.
묘행은 오묘하게 수행한다는 뜻으로, 머무름이 없는 무주의 행이다. 아울러 마음을 닦을 때나 보시를 행할 때는 어떤 조건과 법에 머물러 집착하지 말고 실천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무비스님은 묘행무주분妙行無住分을 아름다울 묘(妙)자, 행할 행(行)자와 무주는 머물지 않는다로 해석해서 '아름다운 행위는 머물지 않는다.'로 멋있게 번역했다. 아름다운 행위는 모든 사람에게 감동을 주고 떠날 때 떠날 줄 알고, 잊을 때 잊을 줄 알고, 체념할 때 체념할 줄 알고, 손 뗄 때 손 뗄 줄 아는 것. 이것이 묘행이고 무주無住이다.
우리는 늘 흔적을 남기려고 하고, 어떤 대가를 바라며 살고 있는지 모른다. 그래서 상처를 받고 집착 하고 산다. 그래서 부처님께서 우리들에게 상에 머물지 말고 아름다운 행동을 하라고 가르치고 있다. 아름다운 행위는 우리들이 실천할 덕목이고 우리들의 행동이여야 한다.

<본문>復次須菩提부차수보리 菩薩보살 於法어법 應無所住응무소주 行於布施행어보시
<해석>또 수보리야, 보살은 모든 법에 있어서 머무는 바 없이 보시를 해야 하는 것이니,
<강설>
앞장 대승정종분大乘正宗分에서 수보리를 불러서 우리 마음을 어떻게 항복받을 것인가에 대해 이야기를 했고, 여기서는 '마음을 어떻게 머물게 할 수 있는지요?' 라는 수보리의 질문에 대해 부처님이 대답한 것이다.
보살은 법에 대해서 머무는 바 없이 보시를 행하라 했다. 여기서 법은 일체 모든 일, 언제 어디서나 어느 경우 어떤 환경 등을 말하는데 구체적으로 색(色)·성(聲)·향(香)·미(味)·촉(觸)·법(法)에서 應無所住응무소주하라 하고 있다. 무소주無所住는 어디에도 머무는 바 없이, 애착함이 없이, 집착함이 없이, 상내지 않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지혜가 없으면 쉽지 않은 일이다.
行於布施행어보시는 보시의 실천을 어떻게 해야 하는 부분인데 보시는 시수물삼륜施受物三輪이란 말이 있는데 삼륜이란 보시하는 사람이 청정해야 하고, 보시하는 물건이 청정해야하고, 보시 받는 사람이 청정해야 공덕이 한량없다고 한다. 그리고 초발심자경문初發心自警文에는 行智具備행지구비는 如車二輪여거이륜이라는 말이 있다. 보시를 하더라도 지혜와 실천이 갖추어져야 완전하다는 뜻이다.
마치 문수의 지혜와 보현의 행이 구비되면 부처님이 출현한다는 화엄경에 나오는 말과 같다.
그러하듯 본문의 무소주無所住는 지혜를, 보시布施는 행동을 뜻하는 것이니 지혜롭게 보시하면 금상첨화란 이야기다. 금상첨화錦上添花 아름다운 비단에 아름다운 수를 놓는 것을 말하는 것이니, 비단은 지혜이고 수를 놓는 것은 실천이니 지혜가 있고 거기서 아름다운 보시의 실천, 선행을 한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본문>所謂不住色布施소위부주색보시 不住聲香味觸法布施부주성향미촉법보시
<해석>어떤 상에 집착하여 베풀지 말며, 소리와 향기와 맛과 감촉과 그 외의 온갖 것에 머물지 말고 보시를 해야 한다.
<강설>
육바라밀 가운데 첫 번째가 보시이다. 보시의 종류도 많다. 대표적으로 재물로 남을 구제해 주는 재보시財布施, 불교의 올바른 진리를 가르쳐 주는 법보시法布施, 외로움과 두려움을 보살펴주는 무외시無畏施 등이 있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어디에도 머물지 않고 베풀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색(色)·성(聲)·향(香)·미(味)·촉(觸)·법(法)에 머물지 말라고 했다.
여기서 색은 물질이고 성은 소리, 향은 향기, 미는 맛, 촉은 감촉, 법은 그 나머지 의식의 대상이다. 그래서 보살은 물질이나 소리 향기 맛 감촉 의식 어디에도 머물지 말고 베푸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본문>須菩提수보리 菩薩보살 應如是布施응여시보시 不住於相부주어상 何以故하이고 若菩薩약보살 不住相布施부주상보시 其福德기복덕 不可思量불가사량
<해석>수보리야! 보살은 반드시 이와 같이 보시하고 어떤 상에 머물지 말아야 한다. 왜냐하면 만약 보살이 어떤 상에 머물지 않고 보시하면 그 복덕은 헤아릴 수 없기 때문이다.
<강설>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보살이 응당히 이와 같이 보시해서 상에 머물지 않는 보시를 하면 보살로서 진정한 삶을 사는 것이다”라고 하고 있다.
보살은 보시할 때는 어떤 상에 머물지 말고 무주상으로 베풀어야 복덕이 헤아릴 수 없이 많다고 하는데 어떻게 상을 없앨 수 있을까? 그것은 철저한 무아(無我)를 체득해야 하고, 본래무일물本來無一物이고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 이치를 알아야 한다. 그래야 중생의 병인 상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고 무주상 보시행을 할 수 있다. 중생의 가장 큰 병은 상병이라고 했다. 상병을 없애면 보살이 되는 것이고, 보살은 어떤 상에 머물지 않기 때문에 그 복덕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크다. 보살은 어머니와 같은 분이다. 어머니는 자식을 위해서 상이 없이 모든 것을 베풀고 또 베푼다. 보살은 금강경의 가르침처럼 무상(無相)이 위종(爲宗)인 것처럼 모든 행위 특히 베푸는 행위에 있어서 상을 없애는 것을 으뜸으로 삼는다. 이와 같이 금강경에서는 집중적으로 상을 없애는 가르침을 펴고 있는 것은 상병이 풀리면 모든 문제가 다 풀리기 때문이다.
그리고 수보리는 부처님께 운하항복기심(云何降伏其心) 즉, 그 마음을 어떻게 항복받을 수 있는지요? 라고 여쭈었다. 상병을 제대로 다스릴 줄 알면 마음을 항복받을 수 있고, 상병만 없애면 그 복덕은 한량없는 무루복無漏福이 된다.라고 답하셨다.

<본문>須菩提수보리 於意云何어의운하 東方虛空동방허공 可思量不가사량부 不也불야 世尊세존 須菩提수보리 南西北方남서북방 四維上下虛空사유상하허공 可思量不가사량부
<해석>수보리야! 어떻게 생각하는가? 동쪽 허공을 가히 헤아릴 수 있겠는가?
헤아릴 수 없습니다. 세존이시여! 수보리야 남쪽 서쪽 북쪽과 네 간방과 위와 아래의 허공을 헤아릴 수 있겠는가?
<강설>부처님께서 무주상보시를 하면 얼마나 큰 공덕이 되는지 말하기 위해 허공을 비유로 들었다. 그러면서 동쪽의 허공이 얼마나 큰지 헤아릴 수 있겠느냐?하고 수보리존자에게 물었다. 허공이란 시작도 끝도 없는 무한대로 헤아릴 수 없기 때문이다. 헤아릴 수 없다고 수보리가 대답하니 이제는 남쪽 서쪽 북쪽과 네 간방과 위과 아래쪽의 허공을 헤아릴 수 있겠는가?하고 묻는다. 사유(四維)란 동남, 서남, 동북, 서북의 간방을 가리키는데, 여기에 동서남북의 사방과 상하上下을 합하면 시방세계가 된다. 이렇듯 불교에서는 평면적인 공간세계만 말하지 않고 방위를 입체적으로 생각하여 말하고 있는데 허공계가 무한함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러하듯 허공의 크기가 본래 한계限界가 없는 것이므로 얼마나 큰지를 비교할 수 없고 생각으로 헤아릴 수 없다. 이러한 허공처럼 무주상보시의 복덕은 한량없다는 것이고, 보살로서 상에 머물지 않고 보시를 할 것 같으면 그 복덕도 또한 그와 같아서 가히 헤아릴 수 없이 무량대복이라는 것이다.

<본문>不也불야 世尊세존 須菩提수보리 菩薩보살 無住相布施무주상보시 福德복덕 亦復如是역부여시 不可思量불가사량 須菩提수보리 菩薩보살 但應如所敎住단응여소교주
<해석>헤아릴 수 없습니다. 세존이시여! 수보리야 보살이 상에 머물지 않고 보시하는 복덕도 또한 이와 같아서 가히 헤아릴 수 없느니라.
수보리야! 보살은 마땅히 가르치는 것과 같이 머물지니라.
<강설>
삼천대천세계에 칠보로 보시하여 장엄한다 해도 보살이 상에 머물었다면 보시의 공덕은 무주상으로 보시한 1원의 가치보다 못하다고 말하며 무주상보시를 강조하고 있다.
부처님은 무주상으로 보시하면 헤아릴 수 없는 공덕이 있게 되니 보살은 이와 같이 아름다운 행을 가르침대로 실천하며 살라고 수보리에 말했다.  앞서 수보리는 부처님께 “보살이 어떻게 살며 어떻게 그 마음을 항복받아야 합니까” 라고 질문을 하였는데 ‘보살이 어떻게 살 것인가(住)’에 대한 대답이다.
무주無住는 새가 허공을 날아가지만 흔적을 남기지 않듯, 우리들의 행위가 어디에도 머물지 않아야 한다는 말한다. 마지막 결론은 보살이 다만 응당히 가르쳐 준 그대로 머무르라(菩薩但應如所敎住)고 한다. 이것은 수보리존자가 선현기청분善現起請分에서 처음에 법문을 청하면서 우리가 어떻게 마음을 머무르며(云何應住), 어떻게 마음을 항복 받아야 되겠습니까?(云何降伏其心) 라는 물음에 대한 마지막 대답이다. 그 답은 '머무는 바 없이 머물라!'라고 답하신 것이다.
머무는 바 없이 머무는 것은 아름다운 삶, 아름다운 마무리는 흔적을 남기지 않는 것이다.




겉모습에 속지 말라. <금강경 강설 7>
분별심(分別心)이 없어야 발심한 보살이다. <금강경 강설5>